아무리 뛰어난 의료 AI 기술도 인증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병원에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의료기기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엄격한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체외진단 분야의 핵심 규제인 유럽의 IVDR와 다국가 단일심사 제도인 MDSAP를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왜 의료기기 인증이 필요한가
의료기기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거나 안전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기기를 위험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등급이 높을수록 까다로운 심사를 요구합니다. 품질경영시스템, 기술문서, 임상 근거, 시판 후 감시까지 제품의 전 주기를 관리하는 것이 인증의 본질입니다.
IVDR: 유럽 체외진단의료기기 규정
IVDR(In Vitro Diagnostic Regulation, EU 2017/746)은 유럽연합의 체외진단의료기기 규정입니다. 기존의 체외진단의료기기 지침(IVDD)을 대체하는 것으로, 가장 큰 변화는 위험 기반 등급 체계의 도입입니다. 제품의 위험도에 따라 Class A부터 D까지 네 단계로 분류합니다. A가 가장 낮은 위험, D가 가장 높은 위험입니다.
등급이 중요한 이유는 심사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IVDD 시절에는 대부분의 체외진단기기가 제조업체의 자체 선언만으로 유럽 시장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IVDR에서는 Class A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품이 공인기관(Notified Body)의 적합성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기술문서 제출이 필수이고, 시판 후 감시(PMS)와 성능 추적(PMPF) 요구사항도 강화되었습니다. 고위험인 Class D와 동반진단 제품에는 추가 심사 절차가 적용됩니다.
IVDR는 2022년 5월 26일부터 전면 적용되었습니다. 유럽 시장에 체외진단의료기기를 출시하고 지속적으로 유통하려면 이 규정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이 유럽에 진단 제품을 수출하려면 피할 수 없는 관문인 셈입니다.
MDSAP: 한 번의 심사로 여러 국가를
MDSAP(Medical Device Single Audit Program, 의료기기 단일심사 프로그램)는 이름 그대로 하나의 심사로 여러 국가의 규제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참여국은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브라질 다섯 곳입니다. 인정된 MDSAP 심사기관이 제조업체에 대해 단일 심사를 수행하면, 참여국의 규제 당국이 그 결과를 자국의 인허가에 활용합니다.
각국마다 따로 심사를 받는 것은 기업에게 큰 부담입니다. 심사 준비 기간, 비용, 대응 인력이 몇 배로 들기 때문입니다. MDSAP는 이 중복을 줄여주는 제도입니다. 특히 미국 FDA, 일본 PMDA 같은 까다로운 규제 당국의 요구사항을 한 번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출 기업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유럽연합은 공식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변화: 2등급 원스톱 인증
국내 소식도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6년 9월 30일부터 2등급 의료기기의 인증과 기술문서심사를 동시에 신청할 수 있는 원스톱 일괄 처리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기존에는 기술문서심사기관의 심사를 먼저 받고 그 결과서를 첨부해 인증을 신청하는 2단계 절차였는데, 이제는 한 번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처리 기간이 기존 약 40일에서 25일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보청기, 치과용 임플란트 같은 생활밀착형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이 빨라질 전망입니다.
실무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
인증 대응의 출발점은 ISO 13485 의료기기 품질경영시스템입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장 진입의 기본 요건으로 요구됩니다. 그 위에 ISO 14971에 따른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고, 제품별 기술문서를 구조화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유럽을 노린다면 UDI(고유기기식별자) 부여와 EUDAMED 등록, 규제 책임자 지정도 필요합니다.
규제는 장벽이기도 하지만, 통과하면 곧 신뢰의 증표가 됩니다. 인증받은 제품이라는 사실 자체가 병원과 환자에게 주는 안심 효과는 마케팅으로 살 수 없는 자산입니다. 기술을 만드는 일만큼 인증을 준비하는 일도 제품의 일부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참고: FDA 510(k) 사례 — 디지털 병리
보도에 따르면, 호주의 옵티스캔(Optiscan Imaging)은 2026년 10월 1일 디지털 병리 장비 InForm의 FDA 510(k) 제출을 완료했습니다. InForm은 조직을 적출한 현장에서 바로 현미경 영상을 얻는 슬라이드 없는 방식으로, 호주 임상검사실에서 모은 84건·13종 조직의 실사용 데이터와 메이요 클리닉 임상 데이터를 근거 자료로 제출했습니다. 510(k)는 이미 허가된 유사 제품과의 '실질적 동등성'을 입증하는 시판 전 신고 경로로, 승인되면 미국 내 상용화가 가능합니다. IVDR의 적합성 평가와는 다른 미국의 접근 방식이라는 점에서 비교해 볼 만합니다.
참고 자료
- DNV, IVDR(체외진단의료기기 규정) 인증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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